'디 워' 때문에 한참 난리났던 때 는 여차저차 시기를 놓쳐서 말을 못하고 넘어갔었지. 뭔가 좀 찝찝하긴 했지만 그간 워낙 많은 이야기가 나왔고, 거기서 내가 한마디 더하면 동어 반복이 될 것 같아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그런데 심형래 골수팬인 나를 하늘이 버리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네? '디 워'가 미국에 개봉하면서 다시 한 번 이야기에 불이 붙었잖아 .
대충 이야기 돌아가는 꼴을 보니까 이래. 미국 평론가들도 우리나라의 평론가들과 마찬가지로 혹평을 했다는 쪽이랑, 관객들은 재미있다고 보는데 무슨 말이냐는 쪽이랑 자웅을 겨루고 있어. 그러면서 아직 개봉한지 얼마 안됐으니까 두고 보자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네? 그래. 배경만 미국에 할리우드로 바뀌었지 다시 또 똑같은 이야기. 다만 다른 점이라면 아무래도 미국이라 그런지 관객 반응이 우리나라에서만큼 폭발적이지는 않다는 거.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짐작이지만 최종 흥행 성적도 우리나라에서 거뒀던 것만큼의 성공을 이뤄낼 것 같지는 않다는 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미 지겹게 반복됐던 이야기가 다시 또 쏟아져 나오고 있어. 그러니까 끝말 잇기를 하기로 해놓고 한쪽은 기러기, 다른 한쪽은 기중기, 이 두 단어만 무한 반복하는 거지. 하다 하다 입 아프니까 잠시 쉬어요. 그랬다가 좀 할만 해지니까 다시 또 기러기, 기중기 하고 있는 거야. 이게 끝이 나겠냐고.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결국 양쪽간에 의견은 좁혀지지 않은 체 끝이 날 거야. 그랬다가 심형래가 차기작을 들고 나오면 다시 또 기러기, 기중기 하겠지. 모르겠네. '라스트 갓파더'가 나오면 그때는 그냥 모두 까는 쪽으로 갈려나? 그래도 나는 절대 심형래 안 깔 것임. 왜냐면 나는 심형래 골수팬이니까.
아무튼 이렇게 지난한 상황에서, 내가 뭔가 말을 한대도 이미 신선한 이야기 거리로 다가갈 상황은 아닌 것 같네. 그보다는 단순히 내 입장이 기러기인지, 기중기인지 밝히는 정도가 될 것 같아. 기러기와 기중기, 너희들이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것이 있다. 나는 기름기다. 이러면서 새로운 국면의 전환을 가져오기는 힘들 것 같다는 거죠. 그래도 이렇게 하늘이 내게 뭔가 말을 하라고 종용하시는데 입장 정리라도 좀 하고 넘어가는 게 나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으니까. 그냥 편하게 몇 마디 주워섬겨 볼게요.
일단 영화, '디 워'에 대한 나의 감상. 재미있었습니다. 즐겁게 봤어요. 하지만 그 재미와 즐거움이 일반적인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거지. 심형래가 만들었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부분들, 그런 것들에서 재미를 느꼈어요. 사전정보 없이 영화만 봤다면? 적어도 심형래 영화라는 걸 알고 본 만큼의 재미는 못 느꼈겠지. 아니다. 사전정보 없이 봐도 이거는 심형래 영화가 분명하다고 알아채지 않았을까? 왜냐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영화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심형래뿐이니까. 그게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아무튼 그래요. 하지만 내가 심형래 골수팬이 아니었고, 그래서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봤다면 어땠을까? 네, 형편없다고 느꼈겠죠, 당연히.
'디 워'는 못 만든 영화 맞아요. 나는 이 나이 먹고도 '우뢰매' 합본 DVD 사면서 낄낄 거리는, 일종의 영화 보는 안목에 있어서 의사무능력자 같은 인간이라 이 영화가 재미있었거든? 그렇지 않은 일반인이라면 대부분 재미없어하는 게 옳아. 그런데 진중권씨를 태두로 하는 소위 평론가 집단에서 하도 까 주는 바람에, '어라? 재미없다더니 나는 재미지기만 하구나' 하는 사람들이 양산돼서 이러는 건가요? 아니면 정말 평론가들에 대한 대중의 반발심 때문에? 도대체 어쩌다 '디 워'를 팔백만이 넘게 보는, 이 집단 히스테리에 가까운 상황이 발생한 걸까? 아니, 세상에 나 만큼 영화 보는 안목이 저질인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단 말이야? 아, 나는 심형래 골수팬이라니까. 다들 나 같아서 그래? 개그맨 시절 심형래 뿐만 아니라 영화 찍고 만들던 시절 심형래도 좋아하는 거예요, 나는. 물론 그런 사람이 있긴 있겠지. 그런데 그런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 백만 명이나 있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지.
분명히 '디 워'를 보고도 재미있다고 할 사람들은 있어요. 우리나라 인구가 몇 천만인데 설마 그런 사람 하나 없을까 봐. 내가 산 증인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주류에서 벗어난 사람들이죠. 그리고 보통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자각하고 있어요. 왜냐면 그들은 특별한 존재니까. 주성치 영화 좋아하는 것도 꽤 마이너한 취향으로 대접받는 마당에 심형래 영화 좋아한다면 정말 마이너 중의 마이너가 돼야 정상일 것 같거든. 그렇게 자기가 마이너라는 걸 아는 사람은 자기가 재미있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함부로 추천 못해요. 그게 자기를 비롯한 소수의 몇몇한테만 재미있는 거라는 걸 아니까.
보통 그런 특이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는 조용히 스러져가는 게 정상입니다. 그리고 그 영화를 본 특이한 취향의 관객들 역시 조용히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겠죠. '디 워'도 그냥 그런 절차를 따르는 게 맞는 영화였어요. 그랬으면 나도 편하게 여기다 감상 몇 줄 적고, 운 좋으면 리플도 한두 개 달리고. 뭐 그러고 말았겠죠. 그런데 이게 작두를 탄 거지. 아주 제대로 탔어. 내가 영화에 대한 언급을 하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개봉 초기에 몇 백만 단위로 관객이 들이닥쳐요. 난리가 났어. 들끓는 거야 막. 그러자 그 특이한 취향의 소유자들이 이성을 잃은 게 아닐까. 아, 이 영화가 나한테만 재미있는 게 아니구나. 거기다가 여태 까지는 모르고 있다가 이번 '디 워' 광풍을 계기로 특이한 취향에 눈을 뜬 사람도 생겼겠지? 암튼 그런 사람들이 그간의 울분을 쏟아내는 거야. '디 워' 재미있다고. 자기는 재미만 있더라고. 여기에 더하기, 별 기대 안 한 것 치고는 재미있었다는 순진한 사람들이랑, 영화는 잘 모르겠고 그냥 심형래가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착한 사람들까지.
정말 이례적인 일이고 사상 유례가 없는데. 어쨌든 '디 워'는 한국에서 흥행한 영화가 되었어요. 나는 지금도 이게 꿈이지 싶어. 사실 '디 워'가 이렇게 성공했다면 '용가리'가 성공 못할 이유가 전혀 없거든? '용가리'뿐만이 아니야. '티라노의 발톱', '영구와 아기 공룡 쭈쭈'도 마찬가지로 성공할 수 있었어요. 영화적으로는 차이가 전혀 없으니까요. 그 동안 발전이 있지 않았냐고? 그럼 다른 사람들은 놉니까? 마찬가지로 같이 발전했죠. 문제는 심형래가 스타트가 늦었다는 거. 그리고 늦은 스타트를 극복할 수 있을 만큼 감독으로서 충분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는 거. 달리기를 할 때 뒤에서 출발해가지고 그냥 남들과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결승선에서도 뒤쳐져 들어오는 거지. 다만 그 동안 이거 하나는 는 것 같애. 영화 작두 태우는 능력. 여기서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디 워'가 흥행에 성공을 한 거지. 그거 말고는 심형래 감독에게서 다른 성공 요인을 나는 절대 못 찾겠어.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심형래 본인도 이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던데? 내가 이번에 영화 말고도 심형래가 출연한 방송을 몇 개 챙겨서 봤지. 그 중 어떤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심형래한테 영화가 성공할 것 같으냐고 물었어. 그때 심형래가 말을 아꼈거든? 성공할 것 같다든지 뭐 그런 확신을 말 하는 게 아니라 언급을 좀 회피했었어. 딴 소리를 막 하더라고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심형래 골수팬이다. 나는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 그의 미세한 안면 근육 떨림, 작은 헛기침 하나에서도 늬앙스를 잡아낼 수가 있거든? 그때 내가 딱 받은 느낌이 이거였어. 심형래도 사실 '디 워'에 영화적으로는 별 자신이 없구나.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화 자체가 호평을 받을 거라고 기대하진 않는구나. 나는 직감했거든. 나와 같은 정신적 파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거야. 그때 심형래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내가 봐도 이런데 평론가들이 보기에는 오죽하겠어? 적어도 평론가라는 직함을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 같은 저질 영화관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당연히 '디 워'가 만족스럽지 못하지. 그래서 그렇다고 말을 하는 거예요. 일반적인 기준에서 못난 영화니까 못났다고 하는 거 지, 그럼 꼭 '심형래 골수팬이라면 관람가', 뭐 이런 말을 써줘야 돼?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라면 누가 보지 말라고 해도 보잖아? 그냥 얌전히 보고, 자기 취향대로 즐기고, 그냥 그러고 지나갔으면 조용했을 거 아냐. 그랬으면 '디 워'도 그냥저냥인 흥행 성적을 남긴 체 심형래의 불굴의 의지는 다시 시험대에 올랐겠지. 그는 과연 이번에도 영화를 만들 것인가, 하고. 그러면 나와 영화를 본 다른 사람들은 그들대로 다시 또 심형래를 응원할 테고. 그냥 그렇게 흘러 가면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 영화가 작두를 타면서 마이너 취향인 사람들이 이성을 잠시 잃게 만들었던 것 같아. '디 워'가 그냥 누구한테나 재미있는 영화인 줄 알고 말이야. 우리 비주류 영화관을 가지신 분들, 진정합시다. '용가리'를 지켜보던 그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자고요. 괜히 우리들 때문에 착한 사람들까지 디빠니, 애국심에 눈이 먼 인간들이라니, 욕을 먹고 있잖아요.
그렇게 다들 정신 차리고 나면 이제 이 지저분한 국면 중 상당수가 깔끔하게 정리될 거라고 봐요, 나는. 영화적 취향 소수자는 얌전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요. 소수자라 뿐이지 누가 '디 워' 보지 말라고 줘 패는 거 아니잖아? 혹시 '디 워' 봤다고 어디서 맞은 사람 있어? 없잖아. 그냥 보고 싶은 영화 보면서 지내면 되는 거예요. 물론 사랑해 마지 않는 심형래의 영화가 성공해서 후속에 후속이 죽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겠죠. 하지만 거기까지. 그런 바람이 지나쳐서 오버를 하면 안 된단 말이야.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지신 분들, 누가 심형래 영화 재미없다고 하면 화나죠? 남들, 그러니까 일반적인 취향을 가진 우리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도 재미없는 영화 억지로 재미있다고 보라고 하면 화나요. 그렇잖아. 사실 나는 화도 잘 안 나더만. 재미없는 걸 재미없다고 하는데 뭘 어떻게 해.
이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디 워'가 미국에서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도 그렇게 우스꽝스럽고, 안타까워 보이지만은 않을 거예요. 남들이 보기에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체, 이것도 붙잡고, 또 저것도 붙잡고 있으려니까 추해 보이는 거지. '디 워'는 현재로서 함량미달인 영화가 맞다. 하지만 거기서 희망을 볼 수는 있는 거 아니냐. 내가 위에서는 좀 가혹하게 스타트가 늦네, 발전이 더디네, 뭐 그렇게 말했지만 일말의 가능성 조차 엿보이지 않는 건 아니니까요. 비록 지금은 부족하지만 이제 시작이지 않느냐. 뭐 이런 거. 그리고 이 영화가 미국에 건너가 정말 흥행에 성공한다면 그것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 일종의 부조리극을 보는 듯한 재미랄까? 이건 아닌가요? 어쨌든 그렇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한다면 아마 다투자는 사람 별로 없을 겁니다. '디 워'에 혹평을 했던 사람이라도 이게 분명 어떤 면에서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 영화란 건 인정을 할 테니까요. 그러면 이제 온 누리에 평화가 오는 거다. 써놓고 보면 이거 참 당연한 사실인데. 그죠?
다만 내가 걱정하는 건 이겁니다. 심형래가 이번 성공에 너무 고무된 것 같다는 거. 심형래가 무서운 게, 정말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해서 못한다는 사람이잖아요. 나는 저번에 '용가리' 개봉 당시에 심형래 감독이 차기작에 대해 언급하던 인터뷰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이무기를 소재로 한 영화랑, '피시 워'라고 물고기들과 인간이 싸우는 영화가 있다고 했었거든. 그때 이무기 영화, 지금의 '디 워'죠. 아무튼 그건 몰라도 '피시 워'는 정말 농담인줄 알았거든? 제목만 들으면 감이 안 올지도 모르는데 그때 '피시 워'에 대한 심형래의 설명이 정말 처참했어요. 본 사람들은 알 거야. 문어 게슈타포가 먹물을 쏘네 어쩌네 하는데 내 마음이 정말. 그런데 그 긴 시간 동안 잊지도 않았는지, 이번에 그 영화 만들 거라잖아요. 이게 무서운 거야 나는. 심형래가 영구아트무비의 현 제작 체제를 평생 안고 갈 것 같아서 무서워요.
그리고 나는 그 동안 '피시 워'만 걱정했는데 이번에 보니까 그건 양반이던데? '라스트 갓파더'에다가, 뭐? '추억의 붕어빵'? '라스트 갓파더' 내용이 그거라면서요. 대부 말론 브란도가 죽으면서 후계자를 정해. 그런데 한국에 숨겨진 자식이 있다고 한대. 그럼 그게 누굴까? 영구. 농담 같지? 나, 심형래 골수팬이지만 정말 식겁했어. 이거 내가 아직 팬심이 부족한 건가? 그런데 심형래는 한 번 말을 내뱉으면 그걸 그대로 만들어버린다는 겁니다. 정말 영구가 말론 브란도 아들로 나오는 영화를 만들 거라는 말이에요. '디 워'의 성공 때문에, 응? 게다가 이제는 감독, 각본에 주연까지 맡겠다는 거네? '추억의 붕어빵'은 또 뭐야? 아, 나도 모르겠다 이젠.
물론 즐겁기는 하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심형래 골수팬이니까. 하지만 이제 그 즐거움이 '티라노의 발톱', '영구와 아기 공룡 쭈쭈', '용가리' 때처럼 순수한 즐거움은 아니에요. '디 워'가 모든 것을 왜곡시켜버린 것 같아. 그냥 비주류 마이너들끼리 모여서 낄낄거리던 그런 시절은 이제 끝나 버린 것 같아요. 너 이 녀석, 원래 너 혼자 좋아하던 건데 남들도 다 좋아하게 되니까 그게 싫은 거지? 아니죠. 절대 아니죠. 그거는 진가를 인정 못 받고 묻혀 있던 그런 것들에나 어울리는 감상이에요. 심형래 영화는 그게 아니거든. 단순한, 단순하고 진정한 B급 영화예요. 왜 그런 거 있잖아. 본인은 진지하게 한다고 하는데 남들 봤을 때 우스운 거가 진짜 웃긴 건 거. 심형래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진짜 B급이거든. 본인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A급을 지향하는데 결과물이 절대적으로 B급인 거지. 그래서 진짜 B급이에요. 진가?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죽 봐 오던 사람들끼리만 보면 되는 겁니다. 그런 건데 이게 요새 범국민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죠. 이런 게 왜곡이 아니면 뭡니까?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다음 번에 정말 심형래 감독이 뭔가 기연을 만난다면, 그래서 내공이 대폭 상승한다면, 그때는 모르겠어요. 그래서 정말 괜찮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이 된다거나. 아니면 깔끔하게 감독의 꿈을 포기하고 제작자로 나간다거나. 그렇게 되면 나는 홀가분하게 그동안 심형래 골수팬으로서 살았던 나날을 정리해야겠죠. 심형래가 뛰어난 감독, 훌륭한 제작자가 된다면 이제 그가 만든 영화에서는 지금까지 느꼈던 즐거움을 느끼기 힘들어질 테니까요. 좋은 영화를 찍는 심형래 감독, 멋진 영화를 만드는 심형래 제작자가 나한테 매력이 있을 리 없잖아? 나는 앞으로도 죽 지금처럼 영화에 대한 질 낮은 안목을 가지고 살아갈 거니까요. 심형래를 떠나는 대신 또 다른 진짜 B급 감독을 찾아 해매게 되겠지. 너무 아쉽겠지만 이미 '디 워'로 이렇게 왜곡되어 버린 이상, 제발 저 두 가지 중 한 쪽으로 결말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정말 골수팬으로서 바라는 마음이에요.
아, 물론 작금의 흥분 상태가 가라 앉고, 왜곡의 장막도 좀 걷혀서, 예전의 심형래로 다시 돌아와 꾸준히 B급 영화를 만들어준다면 그때는 또 그것 나름대로 환영할 만한 일이겠죠. 사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은근히 이쪽을 더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대충 이야기 돌아가는 꼴을 보니까 이래. 미국 평론가들도 우리나라의 평론가들과 마찬가지로 혹평을 했다는 쪽이랑, 관객들은 재미있다고 보는데 무슨 말이냐는 쪽이랑 자웅을 겨루고 있어. 그러면서 아직 개봉한지 얼마 안됐으니까 두고 보자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네? 그래. 배경만 미국에 할리우드로 바뀌었지 다시 또 똑같은 이야기. 다만 다른 점이라면 아무래도 미국이라 그런지 관객 반응이 우리나라에서만큼 폭발적이지는 않다는 거.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짐작이지만 최종 흥행 성적도 우리나라에서 거뒀던 것만큼의 성공을 이뤄낼 것 같지는 않다는 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미 지겹게 반복됐던 이야기가 다시 또 쏟아져 나오고 있어. 그러니까 끝말 잇기를 하기로 해놓고 한쪽은 기러기, 다른 한쪽은 기중기, 이 두 단어만 무한 반복하는 거지. 하다 하다 입 아프니까 잠시 쉬어요. 그랬다가 좀 할만 해지니까 다시 또 기러기, 기중기 하고 있는 거야. 이게 끝이 나겠냐고.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결국 양쪽간에 의견은 좁혀지지 않은 체 끝이 날 거야. 그랬다가 심형래가 차기작을 들고 나오면 다시 또 기러기, 기중기 하겠지. 모르겠네. '라스트 갓파더'가 나오면 그때는 그냥 모두 까는 쪽으로 갈려나? 그래도 나는 절대 심형래 안 깔 것임. 왜냐면 나는 심형래 골수팬이니까.
아무튼 이렇게 지난한 상황에서, 내가 뭔가 말을 한대도 이미 신선한 이야기 거리로 다가갈 상황은 아닌 것 같네. 그보다는 단순히 내 입장이 기러기인지, 기중기인지 밝히는 정도가 될 것 같아. 기러기와 기중기, 너희들이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것이 있다. 나는 기름기다. 이러면서 새로운 국면의 전환을 가져오기는 힘들 것 같다는 거죠. 그래도 이렇게 하늘이 내게 뭔가 말을 하라고 종용하시는데 입장 정리라도 좀 하고 넘어가는 게 나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으니까. 그냥 편하게 몇 마디 주워섬겨 볼게요.
일단 영화, '디 워'에 대한 나의 감상. 재미있었습니다. 즐겁게 봤어요. 하지만 그 재미와 즐거움이 일반적인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거지. 심형래가 만들었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부분들, 그런 것들에서 재미를 느꼈어요. 사전정보 없이 영화만 봤다면? 적어도 심형래 영화라는 걸 알고 본 만큼의 재미는 못 느꼈겠지. 아니다. 사전정보 없이 봐도 이거는 심형래 영화가 분명하다고 알아채지 않았을까? 왜냐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영화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심형래뿐이니까. 그게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아무튼 그래요. 하지만 내가 심형래 골수팬이 아니었고, 그래서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봤다면 어땠을까? 네, 형편없다고 느꼈겠죠, 당연히.
'디 워'는 못 만든 영화 맞아요. 나는 이 나이 먹고도 '우뢰매' 합본 DVD 사면서 낄낄 거리는, 일종의 영화 보는 안목에 있어서 의사무능력자 같은 인간이라 이 영화가 재미있었거든? 그렇지 않은 일반인이라면 대부분 재미없어하는 게 옳아. 그런데 진중권씨를 태두로 하는 소위 평론가 집단에서 하도 까 주는 바람에, '어라? 재미없다더니 나는 재미지기만 하구나' 하는 사람들이 양산돼서 이러는 건가요? 아니면 정말 평론가들에 대한 대중의 반발심 때문에? 도대체 어쩌다 '디 워'를 팔백만이 넘게 보는, 이 집단 히스테리에 가까운 상황이 발생한 걸까? 아니, 세상에 나 만큼 영화 보는 안목이 저질인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단 말이야? 아, 나는 심형래 골수팬이라니까. 다들 나 같아서 그래? 개그맨 시절 심형래 뿐만 아니라 영화 찍고 만들던 시절 심형래도 좋아하는 거예요, 나는. 물론 그런 사람이 있긴 있겠지. 그런데 그런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 백만 명이나 있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지.
분명히 '디 워'를 보고도 재미있다고 할 사람들은 있어요. 우리나라 인구가 몇 천만인데 설마 그런 사람 하나 없을까 봐. 내가 산 증인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주류에서 벗어난 사람들이죠. 그리고 보통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자각하고 있어요. 왜냐면 그들은 특별한 존재니까. 주성치 영화 좋아하는 것도 꽤 마이너한 취향으로 대접받는 마당에 심형래 영화 좋아한다면 정말 마이너 중의 마이너가 돼야 정상일 것 같거든. 그렇게 자기가 마이너라는 걸 아는 사람은 자기가 재미있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함부로 추천 못해요. 그게 자기를 비롯한 소수의 몇몇한테만 재미있는 거라는 걸 아니까.
보통 그런 특이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는 조용히 스러져가는 게 정상입니다. 그리고 그 영화를 본 특이한 취향의 관객들 역시 조용히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겠죠. '디 워'도 그냥 그런 절차를 따르는 게 맞는 영화였어요. 그랬으면 나도 편하게 여기다 감상 몇 줄 적고, 운 좋으면 리플도 한두 개 달리고. 뭐 그러고 말았겠죠. 그런데 이게 작두를 탄 거지. 아주 제대로 탔어. 내가 영화에 대한 언급을 하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개봉 초기에 몇 백만 단위로 관객이 들이닥쳐요. 난리가 났어. 들끓는 거야 막. 그러자 그 특이한 취향의 소유자들이 이성을 잃은 게 아닐까. 아, 이 영화가 나한테만 재미있는 게 아니구나. 거기다가 여태 까지는 모르고 있다가 이번 '디 워' 광풍을 계기로 특이한 취향에 눈을 뜬 사람도 생겼겠지? 암튼 그런 사람들이 그간의 울분을 쏟아내는 거야. '디 워' 재미있다고. 자기는 재미만 있더라고. 여기에 더하기, 별 기대 안 한 것 치고는 재미있었다는 순진한 사람들이랑, 영화는 잘 모르겠고 그냥 심형래가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착한 사람들까지.
정말 이례적인 일이고 사상 유례가 없는데. 어쨌든 '디 워'는 한국에서 흥행한 영화가 되었어요. 나는 지금도 이게 꿈이지 싶어. 사실 '디 워'가 이렇게 성공했다면 '용가리'가 성공 못할 이유가 전혀 없거든? '용가리'뿐만이 아니야. '티라노의 발톱', '영구와 아기 공룡 쭈쭈'도 마찬가지로 성공할 수 있었어요. 영화적으로는 차이가 전혀 없으니까요. 그 동안 발전이 있지 않았냐고? 그럼 다른 사람들은 놉니까? 마찬가지로 같이 발전했죠. 문제는 심형래가 스타트가 늦었다는 거. 그리고 늦은 스타트를 극복할 수 있을 만큼 감독으로서 충분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는 거. 달리기를 할 때 뒤에서 출발해가지고 그냥 남들과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결승선에서도 뒤쳐져 들어오는 거지. 다만 그 동안 이거 하나는 는 것 같애. 영화 작두 태우는 능력. 여기서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디 워'가 흥행에 성공을 한 거지. 그거 말고는 심형래 감독에게서 다른 성공 요인을 나는 절대 못 찾겠어.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심형래 본인도 이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던데? 내가 이번에 영화 말고도 심형래가 출연한 방송을 몇 개 챙겨서 봤지. 그 중 어떤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심형래한테 영화가 성공할 것 같으냐고 물었어. 그때 심형래가 말을 아꼈거든? 성공할 것 같다든지 뭐 그런 확신을 말 하는 게 아니라 언급을 좀 회피했었어. 딴 소리를 막 하더라고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심형래 골수팬이다. 나는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 그의 미세한 안면 근육 떨림, 작은 헛기침 하나에서도 늬앙스를 잡아낼 수가 있거든? 그때 내가 딱 받은 느낌이 이거였어. 심형래도 사실 '디 워'에 영화적으로는 별 자신이 없구나.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화 자체가 호평을 받을 거라고 기대하진 않는구나. 나는 직감했거든. 나와 같은 정신적 파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거야. 그때 심형래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내가 봐도 이런데 평론가들이 보기에는 오죽하겠어? 적어도 평론가라는 직함을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 같은 저질 영화관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당연히 '디 워'가 만족스럽지 못하지. 그래서 그렇다고 말을 하는 거예요. 일반적인 기준에서 못난 영화니까 못났다고 하는 거 지, 그럼 꼭 '심형래 골수팬이라면 관람가', 뭐 이런 말을 써줘야 돼?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라면 누가 보지 말라고 해도 보잖아? 그냥 얌전히 보고, 자기 취향대로 즐기고, 그냥 그러고 지나갔으면 조용했을 거 아냐. 그랬으면 '디 워'도 그냥저냥인 흥행 성적을 남긴 체 심형래의 불굴의 의지는 다시 시험대에 올랐겠지. 그는 과연 이번에도 영화를 만들 것인가, 하고. 그러면 나와 영화를 본 다른 사람들은 그들대로 다시 또 심형래를 응원할 테고. 그냥 그렇게 흘러 가면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 영화가 작두를 타면서 마이너 취향인 사람들이 이성을 잠시 잃게 만들었던 것 같아. '디 워'가 그냥 누구한테나 재미있는 영화인 줄 알고 말이야. 우리 비주류 영화관을 가지신 분들, 진정합시다. '용가리'를 지켜보던 그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자고요. 괜히 우리들 때문에 착한 사람들까지 디빠니, 애국심에 눈이 먼 인간들이라니, 욕을 먹고 있잖아요.
그렇게 다들 정신 차리고 나면 이제 이 지저분한 국면 중 상당수가 깔끔하게 정리될 거라고 봐요, 나는. 영화적 취향 소수자는 얌전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요. 소수자라 뿐이지 누가 '디 워' 보지 말라고 줘 패는 거 아니잖아? 혹시 '디 워' 봤다고 어디서 맞은 사람 있어? 없잖아. 그냥 보고 싶은 영화 보면서 지내면 되는 거예요. 물론 사랑해 마지 않는 심형래의 영화가 성공해서 후속에 후속이 죽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겠죠. 하지만 거기까지. 그런 바람이 지나쳐서 오버를 하면 안 된단 말이야.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지신 분들, 누가 심형래 영화 재미없다고 하면 화나죠? 남들, 그러니까 일반적인 취향을 가진 우리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도 재미없는 영화 억지로 재미있다고 보라고 하면 화나요. 그렇잖아. 사실 나는 화도 잘 안 나더만. 재미없는 걸 재미없다고 하는데 뭘 어떻게 해.
이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디 워'가 미국에서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도 그렇게 우스꽝스럽고, 안타까워 보이지만은 않을 거예요. 남들이 보기에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체, 이것도 붙잡고, 또 저것도 붙잡고 있으려니까 추해 보이는 거지. '디 워'는 현재로서 함량미달인 영화가 맞다. 하지만 거기서 희망을 볼 수는 있는 거 아니냐. 내가 위에서는 좀 가혹하게 스타트가 늦네, 발전이 더디네, 뭐 그렇게 말했지만 일말의 가능성 조차 엿보이지 않는 건 아니니까요. 비록 지금은 부족하지만 이제 시작이지 않느냐. 뭐 이런 거. 그리고 이 영화가 미국에 건너가 정말 흥행에 성공한다면 그것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 일종의 부조리극을 보는 듯한 재미랄까? 이건 아닌가요? 어쨌든 그렇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한다면 아마 다투자는 사람 별로 없을 겁니다. '디 워'에 혹평을 했던 사람이라도 이게 분명 어떤 면에서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 영화란 건 인정을 할 테니까요. 그러면 이제 온 누리에 평화가 오는 거다. 써놓고 보면 이거 참 당연한 사실인데. 그죠?
다만 내가 걱정하는 건 이겁니다. 심형래가 이번 성공에 너무 고무된 것 같다는 거. 심형래가 무서운 게, 정말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해서 못한다는 사람이잖아요. 나는 저번에 '용가리' 개봉 당시에 심형래 감독이 차기작에 대해 언급하던 인터뷰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이무기를 소재로 한 영화랑, '피시 워'라고 물고기들과 인간이 싸우는 영화가 있다고 했었거든. 그때 이무기 영화, 지금의 '디 워'죠. 아무튼 그건 몰라도 '피시 워'는 정말 농담인줄 알았거든? 제목만 들으면 감이 안 올지도 모르는데 그때 '피시 워'에 대한 심형래의 설명이 정말 처참했어요. 본 사람들은 알 거야. 문어 게슈타포가 먹물을 쏘네 어쩌네 하는데 내 마음이 정말. 그런데 그 긴 시간 동안 잊지도 않았는지, 이번에 그 영화 만들 거라잖아요. 이게 무서운 거야 나는. 심형래가 영구아트무비의 현 제작 체제를 평생 안고 갈 것 같아서 무서워요.
그리고 나는 그 동안 '피시 워'만 걱정했는데 이번에 보니까 그건 양반이던데? '라스트 갓파더'에다가, 뭐? '추억의 붕어빵'? '라스트 갓파더' 내용이 그거라면서요. 대부 말론 브란도가 죽으면서 후계자를 정해. 그런데 한국에 숨겨진 자식이 있다고 한대. 그럼 그게 누굴까? 영구. 농담 같지? 나, 심형래 골수팬이지만 정말 식겁했어. 이거 내가 아직 팬심이 부족한 건가? 그런데 심형래는 한 번 말을 내뱉으면 그걸 그대로 만들어버린다는 겁니다. 정말 영구가 말론 브란도 아들로 나오는 영화를 만들 거라는 말이에요. '디 워'의 성공 때문에, 응? 게다가 이제는 감독, 각본에 주연까지 맡겠다는 거네? '추억의 붕어빵'은 또 뭐야? 아, 나도 모르겠다 이젠.
물론 즐겁기는 하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심형래 골수팬이니까. 하지만 이제 그 즐거움이 '티라노의 발톱', '영구와 아기 공룡 쭈쭈', '용가리' 때처럼 순수한 즐거움은 아니에요. '디 워'가 모든 것을 왜곡시켜버린 것 같아. 그냥 비주류 마이너들끼리 모여서 낄낄거리던 그런 시절은 이제 끝나 버린 것 같아요. 너 이 녀석, 원래 너 혼자 좋아하던 건데 남들도 다 좋아하게 되니까 그게 싫은 거지? 아니죠. 절대 아니죠. 그거는 진가를 인정 못 받고 묻혀 있던 그런 것들에나 어울리는 감상이에요. 심형래 영화는 그게 아니거든. 단순한, 단순하고 진정한 B급 영화예요. 왜 그런 거 있잖아. 본인은 진지하게 한다고 하는데 남들 봤을 때 우스운 거가 진짜 웃긴 건 거. 심형래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진짜 B급이거든. 본인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A급을 지향하는데 결과물이 절대적으로 B급인 거지. 그래서 진짜 B급이에요. 진가?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죽 봐 오던 사람들끼리만 보면 되는 겁니다. 그런 건데 이게 요새 범국민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죠. 이런 게 왜곡이 아니면 뭡니까?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다음 번에 정말 심형래 감독이 뭔가 기연을 만난다면, 그래서 내공이 대폭 상승한다면, 그때는 모르겠어요. 그래서 정말 괜찮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이 된다거나. 아니면 깔끔하게 감독의 꿈을 포기하고 제작자로 나간다거나. 그렇게 되면 나는 홀가분하게 그동안 심형래 골수팬으로서 살았던 나날을 정리해야겠죠. 심형래가 뛰어난 감독, 훌륭한 제작자가 된다면 이제 그가 만든 영화에서는 지금까지 느꼈던 즐거움을 느끼기 힘들어질 테니까요. 좋은 영화를 찍는 심형래 감독, 멋진 영화를 만드는 심형래 제작자가 나한테 매력이 있을 리 없잖아? 나는 앞으로도 죽 지금처럼 영화에 대한 질 낮은 안목을 가지고 살아갈 거니까요. 심형래를 떠나는 대신 또 다른 진짜 B급 감독을 찾아 해매게 되겠지. 너무 아쉽겠지만 이미 '디 워'로 이렇게 왜곡되어 버린 이상, 제발 저 두 가지 중 한 쪽으로 결말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정말 골수팬으로서 바라는 마음이에요.
아, 물론 작금의 흥분 상태가 가라 앉고, 왜곡의 장막도 좀 걷혀서, 예전의 심형래로 다시 돌아와 꾸준히 B급 영화를 만들어준다면 그때는 또 그것 나름대로 환영할 만한 일이겠죠. 사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은근히 이쪽을 더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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