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봤다. 단관개봉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관람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일이 아니었다면 거의 갈 일이 없었을 필름포럼(구 헐리우드 극장)을 가보게 돼서 더 좋은 경험이 되었음.
영화 자체에 대해서 좀 이야기해 보자면,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센스 멋쟁이 더글러스 애덤스씨의 유려한 유머를 얼마나 스크린에 되살려 놓을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이 정도면 좋다.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어느정도 가감이 있긴 하지만 충분히 웃고 즐길 수 있었다. 앞으로 후속작이 만들어진다면 그것들과 연계 될 요소들을 미리 보여준 것도 재미있었고.
그렇지만 원작에 묘사되어 있는 이런저런 디테일 들을 좀 더 보여주지 못한 점은 원작의 팬으로서 심히 아쉽다. 아쉽다고 해서 영화를 성에 차게 만들지 못한 제작진을 탓하는 게 아니다. 스텝롤이 올라가는 시간 까지 할애해서 원작의 유머를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 제작진의 노력은 충분히 높게 평가한다. 단지 원작을 보지 않고 영화만 본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치게 될 주옥같은 유머 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드는 건 역시 어쩔 수 없다. 그러니 혹시라도 원작을 아직 안 본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그 외에 영화를 보면서 한가지 놀랬던 점은 스토리가 당초 예상 보다 훨씬 많이 각색되어 있더라는 사실이다. 물론 굵직굵직한 부분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결말부분의 처리라든지, 이런저런 디테일에서 원작과 꽤 차이가 있다. 하지만 원작자인 더글러스 애덤스가 직접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해서 그런지 바뀐 부분에서 오는 이질감 같은 건 거의 없었다.
다만 극적 재미를 위해 첨가했다는 로맨스는 역시나 좀 거슬린다. 이미 여기저기서 지적당한 부분이라 마음에 준비는 했었지만 로맨스 때문에 뒤바뀐 트릴리언이라는 캐릭터의 색깔은 많이 아쉽다. 아서를 보자마자 자포드는 안중에도 없고, 아서에게 우주선 내부를 친절히 소개해주며, 마지막에 결국 아서를 껴안는 트릴리언은 내가 알고 있던 트릴리언과 너무 달라서 쉽게 적응이 안된다.
그래도 역시 팬으로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울 수 밖에 없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개봉관도 제대로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거의 극장에 원정 가다시피 한 사람으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거기다 팬들만 모여서 그런지 관객의 호응도가 엄청났던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시작하자마자 여기저기서 들리는 웃음 하며, 몇몇 장면에서는 박수까지 터졌고, 스탭롤이 올라갈 때 역시 다들 박수를 보냈다. 여태까지 스탭롤이 흐르는데도 자리를 지킨 사람이 이렇게 많은 영화는 처음이었다. 관객 호응 밀집도로만 보면 스타워즈 저리가라 할 정도였으니까.
아, 정말 첫만남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여전했다.
Trackback Address :: http://www.fonac.net/tt/trackback/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