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은 잘 만들어진 괴수 영화였다. 사실 이런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정보를 처음 접하고 티저 트레일러를 볼 때 까지만 해도 한강의 괴물을 소재로 한 미스테리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고 있는 줄 알았다. 내가 생각한 그 영화에서 괴수란 어쩌면 아예 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 사람들의 망상이 만들어낸 존재를 괴수로 표현한 그런 영화라도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런 줄만 알고 있다가 언제부턴가 '괴물'이 괴수물이라는 이야기를 접하고 당황했다. 괴수물이라니.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기 직전까지도 '괴물'이 괴수 영화라는 사실에 의혹을 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알겠다. '괴물'은 괴수 영화가 맞았다. 그것도 꽤 잘 만들어진.
괴수물에 대한 지식이 일천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전까지 나에게 있어 괴수는 거대한 무언가였다. 아주아주 거대해서 사람쯤은 쉬 밟아 죽일 수 있는, 좀 더 나아가 뭔가 불같은 것이라도 내 뿜을 수 있는, 그런 압도적인 존재였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고지라, 용가리 같은 존재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내가 '괴물'을 괴수 영화로 받아들이는 데 어색해 했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기 전 예고편에서 슬쩍슬쩍 보이던 괴수는 그다지 압도적이지 않다. 크기도 작을 뿐더러 그 움직임에서도 그리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괴수라 인정하기에 뭔가 모자란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난 지금 영화 '괴물'이 괴수 영화라는 데 토를 달 생각은 전혀 없다. '괴물'의 괴수는 괴수로서의 제 매력을 훌륭히 발휘하고 있었다.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괴수를 선 보이고 있다. 일단 봉준호 감독의 괴수는 그다지 크지 않다. 건물을 때려 부술 정도의 크기는 고사하고 겨우 사람 하나 삼키는 데도 여러번 입을 여닫아야할 정도로 작다. 외양 역시 독특하다. 선배들의 패턴을 이어받아 이족보행을 하고 있긴 하지만 허리를 숙인 체 매우 기민하게 움직인다. '쥬라기 공원'을 보고 티라노 사우르스가 허리를 지면에 수평하게 숙이고 걸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받은 신선함 같은 걸 느꼈다. 이런 모습, 움직임은 기존의 정형화된 괴수들과 다른 성격을 영화에 부여했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괴수가 첫모습을 선보이는데도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호기심 정도를 느낄 뿐 공포는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다리 아래 매달려 있는 괴수를 신기하게 바라보기만 할 뿐 도망치거나 하진 않는다. 심지어 먹을 걸 던지는 등 장난까지 쳐댄다. 하지만 곧 괴수는 본모습을 드러낸다. 기존 괴수들의 압도적 공포감을 기대했던 나 같은 관객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괴수는 새로운 종류의 공포감을 유감없이 선사한다.
저런 모습의 괴수라면 야심한 밤 올림픽 대로를 운전해 가는 나 앞에 모습을 드러내도 이상할 게 없겠다. 저 영화 속의 괴수라면 열대야를 피해 한강 고수부지에 나와 앉아 있는 내 앞에 나타날 수도 있겠다. 이런 느낌. '괴물'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공포는 이런 류의 공포였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괴물'의 괴수는 때려 부수는 괴수가 아니라 놀래키는 괴수다. 영화 속에서 괴수의 뭔가 게대로 된 파괴 행각은 영화 초반 딱 한번 등장할 뿐이다. 그 즉시 괴수가 발견된 곳 주변은 특별 관리된다. 영화가 끝날 때 까지 괴수는 그곳을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으로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들여 괴롭힌다.
이건 아주 음습한 공포다. 이 영화를 보고 나와 집에 가는 길에 혹시 한강 주변이라도 지나게 되면 한번쯤 그곳을 다시 보게 된다. 강변 도로를 타고 가다 다리 밑을 지나게 되면 왠지 고개를 들어 평소에는 보지 않던 다리 밑을 한번 쯤 쳐다보게 된다. 이 영화가 뇌리에 남아 있는 한 한강은 내가 늘상 봐오던 한강과는 왠지 좀 다르다. '괴물'의 괴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당장 뛰쳐 나와 압도적인 힘으로 종로 한바닥을 때려 부수며 공황 상태를 불러오진 않는다. 그러나 바로 지금도 어두운 한강 다리 밑 어느 한 구석을 배회하고 있을 수는 있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 슬그머니 사람 한 두명을 입에 물고는 유유히 한강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영화 '괴물'에서 봉준호 감독이 만들어 보여준 괴수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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