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원작 소설을 쓴 작가 와 영화를 만든 감독 사이의 역량 차이다. 원작의 작가가 자신이 억울했던 이야기를 남이 안보는 일기장에 주절주절 써 내려가듯 소설을 썼다면, 영화 감독은 그것을 깔끔하게 다듬어서 다 같이 볼만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놓았다.
책을 읽으면서는 남은 페이지가 얼마 안 되도록까지 별다른 이야기의 진행이 없는 게, 이래가지고 어떻게 끝을 맺으려는 건지 독자인 내가 다 난감했었다. 그 지경이 되도록 지리하게 나열된, 서로 별 상관도 없고 오로지 주인공이 상사에게 괴롭힘 당한다는 공통점만을 가진 파편화된 에피소드들이 읽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물론 실제 자신을 괴롭혔던 상사에 대한 미움, 그리고 어떻게든 그것을 보복하고 싶은 작가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게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 져서는 안된다. 책을 집어 든 독자가, 시시콜콜한 작가의 고생담을 하나하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카운셀러이길 바래서는 안되지 않을까? 거기다 자신의 옛 상사를 깎아 내리려는 수단이며 극중 인물에 반영된 작가의 사고방식이 하나같이 치졸해서, 되려 나중으로 갈수록 그에 동의하기 힘들어진다. 딱 그런 수준의 동기로 이 책을 썼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나면 그때부터는 더 이상 읽기가 싫어지는데 그 후로도 작가의 푸념은 한참을 더 이어간다. 그러니 질릴 수 밖에.
반면 영화는 원작의 이러한 서툰 모습을 상당 부분 걷어내고 관객이 나름 받아들일 만한 깔끔한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원작에서 중구난방이었던 에피소드들 중, 쳐낼 것은 쳐내고, 남은 것들은 적절히 재배치한 뒤, 각각에 개연성을 부여해서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의 흐름을 가지도록 탈바꿈시켰다. 덕분에 영화를 보고 나면 원작의 이야기가 얼마나 쓸데없이 늘어져 있었는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사실 책 한 권 내내, 그것도 모자라 또 다른 한 권이 다 하도록 똑같은 페이스로 상사에 대한 불평을 줄곧 늘어놓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원작이 하고 있는 이야기의 형편 없음과 그걸 가져다 잘 다듬은 영화에 대해 먼저 언급 했지만, 사실 그 이전에 소설과 영화는 그 지향하는 바 자체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했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에 기반해 만들어졌음에도 영화는 원작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말 그대로 미란다를 악마, 패션계를 지옥으로 묘사하고 있다. 작가가 패션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장장 책 두 권을 오롯이 그 분야에 대한 험담을 내뱉는 데 할애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숫제 패션산업에 대한 672쪽 분량의 악플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지경이다. 한 사람에 대한 분노가 그 사람이 몸담고 있는 분야 전체에 대한 미움으로까지 번진 애꿎은 케이스랄까. 때문에 그 미움은 근거가 빈약하고 그 결과, 작가의 푸념도 장황하게 느껴진다. 패션산업에 대한 앞뒤 없는 분노, 그리고 그로 인한 폭언으로 가득 찬 게 바로 이 소설이다.
하지만 영화는 같은 소재에 원작과 다른 방향에서 접근한다. 영화는 작가의 그 맹목적인 분노를 그대로 옮겨 놓기 보다, 그런 분노를 품게 된 작가에게 점잖은 충고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처럼 보인다. '패션이라는 게 꼭 그리 몹쓸 것만은 아니란다. 개인적인 감정을 쏟아내는 것도 정도가 있지. 네가 그렇게 깎아내려 마지 않는 패션산업이 어떤 것이며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긴 하니?' 라면 비슷할까?
영화는 이렇듯 작가에 의해 형편없이 격하되었던 패션산업의 이미지를 회복 시키고, 그에 따라 제자리를 찾게 된 캐릭터들을 가지고 좀 더 제대로 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덕분에 저널리즘에 목 매고 패션 알기를 뭣처럼 하던 앤드리아는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의 가치를 조금씩 깨달아간다. 결국 런어웨이를 박차고 나와 자신이 가고 싶었던 길을 간다는 결말까지 소설과 다른 건 아니지만 이러한 조정 덕분에 그 과정이 더욱 섬세하게 그려졌다. 그 결과 마지막 그녀의 결정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린다고 할까? 이는 미란다에게 엿이나 먹으라며 냅다 뛰쳐나왔던 소설의 앤드리아와 달리, 관점의 차이를 확인하고 조용히 물러선 앤드리아 쪽이 좀 더 성숙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은 그런 앤드리아의 결정에 조금 더 믿음이 가는 것일 테고 말이다. 그러고보면 원작에서 끝까지 정신 차리지 못하고 찌질거렸던 앤드리아, 즉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캐릭터를 이정도 까지 끌어올려 주었다는 점에서 작가가 영화에 고마워해야 하는 건 아닐지.
하지만 역시 영화로 넘어오면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맞이한 캐릭터는 미란다일 것이다. 소설에서는 작가에게 미움을 산 나머지 진정 악마처럼 그려졌던 미란다가, 영화에서는 자신의 지위에 걸맞는 능력과 몸담고 있는 분야에 대한 자부심을 갖춘 일류 패션지 편집장다운 모습으로 새로이 그려진다.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패션계가 어떤 곳인지 들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는 철부지 앤드리아를 데리고 일하면서, 사회생활이란 어떤 것인지, 패션이란 어떤 것인지 확고하고 따끔한 가르침을 내리는 인물로서 말이다. 풋내기에 불과한 앤드리아가 심오한 패션의 진리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피식 웃을 때, 보다 못한 미란다가 깊이 있는 어조로 차분히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장면, 그리고 그와 함께 미란다의 손에서 한 벌의 의상이 제 모습을 갖춰 나가는 장면은 하나의 전환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화의 앤드리아와 미란다는 소설과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물론 미란다는 여전히 소설에서처럼 혹독하고 차가운 인물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밑도 끝도 없이 주인공에게 시련을 안겨 줬던 소설의 미란다와는 달리, 영화의 미란다는 주인공에게 애정을 가지고 좀 더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리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로서 시련을 부과한다. 게다가 일에 대한 입장 차이 때문에 결국 다른 길을 걷게 되는 앤드리아에게 끝까지 신뢰를 져버리지 않고, 심지어 그녀가 새로 얻게 될 직장에 추천을 해줄 정도로 상사다운 모습을 보인다. 가장 친한 친구가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라 제대로 일 할 수 없는 앤드리아를 가차없이 밀어 부치다, 결국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던 소설의 미란다와는 하늘의 땅 차이, 아니 천사와 악마의 차이인 것이다. 그 외에도 악당으로서의 모습 외에는 도대체 독자에게 어필할 게 없었던 소설의 모습과 달리, 가족관계 때문에 고뇌도 하고 또 직장에서 마주친 위기를 극복해 내기도 하는 등 좀 더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의 미란다에게서 더 큰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앤드리아와 미란다 뿐만이 아니다. 원작에서 아주 잠깐 언급되며 패션계의 우스꽝스러움을 묘사하기 위해 희생되었던 나이젤의 캐릭터는 앤드리아를 일깨워주는 멘토로서 재조명되었으며, 주인공을 유혹하는 것 외에는 당최 왜 나왔는지 그 이유를 알기 힘들었던 크리스찬 역시 극적 반전을 일구는데 일조함으로써 좀 더 입체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이쯤 되면 구제불능 수준이었던 원작의 이야기를 가져다 하나의 잘 짜인 오락 영화 시나리오로 탈바꿈 시킨 제작사의 역량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질 지경이다.
일각에서는 소설의 그 독하게 쏘는 맛이 없어져 싫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잘 다듬어 매끈해지긴 했지만 그와 함께 조금은 특색 없어진 영화의 이야기가 살짝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잃은 것이 치졸함이고 얻은 것이 한 전문 분야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와 존중, 그리고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나는 그쪽을 택하고 싶다. 별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남의 불평불만을 들어주기에는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불평불만 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원작 소설의 유일한 순기능은 '하긴, 세상에 고생하는 사람이 나 뿐 만은 절대 아니지' 하는 일종의 자기위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히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고 싶다면 책은 던져 버리고 영화를 보자. 희생양은 나 하나로 족하니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는 남은 페이지가 얼마 안 되도록까지 별다른 이야기의 진행이 없는 게, 이래가지고 어떻게 끝을 맺으려는 건지 독자인 내가 다 난감했었다. 그 지경이 되도록 지리하게 나열된, 서로 별 상관도 없고 오로지 주인공이 상사에게 괴롭힘 당한다는 공통점만을 가진 파편화된 에피소드들이 읽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물론 실제 자신을 괴롭혔던 상사에 대한 미움, 그리고 어떻게든 그것을 보복하고 싶은 작가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게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 져서는 안된다. 책을 집어 든 독자가, 시시콜콜한 작가의 고생담을 하나하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카운셀러이길 바래서는 안되지 않을까? 거기다 자신의 옛 상사를 깎아 내리려는 수단이며 극중 인물에 반영된 작가의 사고방식이 하나같이 치졸해서, 되려 나중으로 갈수록 그에 동의하기 힘들어진다. 딱 그런 수준의 동기로 이 책을 썼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나면 그때부터는 더 이상 읽기가 싫어지는데 그 후로도 작가의 푸념은 한참을 더 이어간다. 그러니 질릴 수 밖에.
반면 영화는 원작의 이러한 서툰 모습을 상당 부분 걷어내고 관객이 나름 받아들일 만한 깔끔한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원작에서 중구난방이었던 에피소드들 중, 쳐낼 것은 쳐내고, 남은 것들은 적절히 재배치한 뒤, 각각에 개연성을 부여해서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의 흐름을 가지도록 탈바꿈시켰다. 덕분에 영화를 보고 나면 원작의 이야기가 얼마나 쓸데없이 늘어져 있었는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사실 책 한 권 내내, 그것도 모자라 또 다른 한 권이 다 하도록 똑같은 페이스로 상사에 대한 불평을 줄곧 늘어놓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원작이 하고 있는 이야기의 형편 없음과 그걸 가져다 잘 다듬은 영화에 대해 먼저 언급 했지만, 사실 그 이전에 소설과 영화는 그 지향하는 바 자체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했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에 기반해 만들어졌음에도 영화는 원작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말 그대로 미란다를 악마, 패션계를 지옥으로 묘사하고 있다. 작가가 패션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장장 책 두 권을 오롯이 그 분야에 대한 험담을 내뱉는 데 할애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숫제 패션산업에 대한 672쪽 분량의 악플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지경이다. 한 사람에 대한 분노가 그 사람이 몸담고 있는 분야 전체에 대한 미움으로까지 번진 애꿎은 케이스랄까. 때문에 그 미움은 근거가 빈약하고 그 결과, 작가의 푸념도 장황하게 느껴진다. 패션산업에 대한 앞뒤 없는 분노, 그리고 그로 인한 폭언으로 가득 찬 게 바로 이 소설이다.
하지만 영화는 같은 소재에 원작과 다른 방향에서 접근한다. 영화는 작가의 그 맹목적인 분노를 그대로 옮겨 놓기 보다, 그런 분노를 품게 된 작가에게 점잖은 충고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처럼 보인다. '패션이라는 게 꼭 그리 몹쓸 것만은 아니란다. 개인적인 감정을 쏟아내는 것도 정도가 있지. 네가 그렇게 깎아내려 마지 않는 패션산업이 어떤 것이며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긴 하니?' 라면 비슷할까?
영화는 이렇듯 작가에 의해 형편없이 격하되었던 패션산업의 이미지를 회복 시키고, 그에 따라 제자리를 찾게 된 캐릭터들을 가지고 좀 더 제대로 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덕분에 저널리즘에 목 매고 패션 알기를 뭣처럼 하던 앤드리아는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의 가치를 조금씩 깨달아간다. 결국 런어웨이를 박차고 나와 자신이 가고 싶었던 길을 간다는 결말까지 소설과 다른 건 아니지만 이러한 조정 덕분에 그 과정이 더욱 섬세하게 그려졌다. 그 결과 마지막 그녀의 결정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린다고 할까? 이는 미란다에게 엿이나 먹으라며 냅다 뛰쳐나왔던 소설의 앤드리아와 달리, 관점의 차이를 확인하고 조용히 물러선 앤드리아 쪽이 좀 더 성숙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은 그런 앤드리아의 결정에 조금 더 믿음이 가는 것일 테고 말이다. 그러고보면 원작에서 끝까지 정신 차리지 못하고 찌질거렸던 앤드리아, 즉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캐릭터를 이정도 까지 끌어올려 주었다는 점에서 작가가 영화에 고마워해야 하는 건 아닐지.
하지만 역시 영화로 넘어오면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맞이한 캐릭터는 미란다일 것이다. 소설에서는 작가에게 미움을 산 나머지 진정 악마처럼 그려졌던 미란다가, 영화에서는 자신의 지위에 걸맞는 능력과 몸담고 있는 분야에 대한 자부심을 갖춘 일류 패션지 편집장다운 모습으로 새로이 그려진다.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패션계가 어떤 곳인지 들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는 철부지 앤드리아를 데리고 일하면서, 사회생활이란 어떤 것인지, 패션이란 어떤 것인지 확고하고 따끔한 가르침을 내리는 인물로서 말이다. 풋내기에 불과한 앤드리아가 심오한 패션의 진리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피식 웃을 때, 보다 못한 미란다가 깊이 있는 어조로 차분히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장면, 그리고 그와 함께 미란다의 손에서 한 벌의 의상이 제 모습을 갖춰 나가는 장면은 하나의 전환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화의 앤드리아와 미란다는 소설과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물론 미란다는 여전히 소설에서처럼 혹독하고 차가운 인물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밑도 끝도 없이 주인공에게 시련을 안겨 줬던 소설의 미란다와는 달리, 영화의 미란다는 주인공에게 애정을 가지고 좀 더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리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로서 시련을 부과한다. 게다가 일에 대한 입장 차이 때문에 결국 다른 길을 걷게 되는 앤드리아에게 끝까지 신뢰를 져버리지 않고, 심지어 그녀가 새로 얻게 될 직장에 추천을 해줄 정도로 상사다운 모습을 보인다. 가장 친한 친구가 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라 제대로 일 할 수 없는 앤드리아를 가차없이 밀어 부치다, 결국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던 소설의 미란다와는 하늘의 땅 차이, 아니 천사와 악마의 차이인 것이다. 그 외에도 악당으로서의 모습 외에는 도대체 독자에게 어필할 게 없었던 소설의 모습과 달리, 가족관계 때문에 고뇌도 하고 또 직장에서 마주친 위기를 극복해 내기도 하는 등 좀 더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의 미란다에게서 더 큰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앤드리아와 미란다 뿐만이 아니다. 원작에서 아주 잠깐 언급되며 패션계의 우스꽝스러움을 묘사하기 위해 희생되었던 나이젤의 캐릭터는 앤드리아를 일깨워주는 멘토로서 재조명되었으며, 주인공을 유혹하는 것 외에는 당최 왜 나왔는지 그 이유를 알기 힘들었던 크리스찬 역시 극적 반전을 일구는데 일조함으로써 좀 더 입체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이쯤 되면 구제불능 수준이었던 원작의 이야기를 가져다 하나의 잘 짜인 오락 영화 시나리오로 탈바꿈 시킨 제작사의 역량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질 지경이다.
일각에서는 소설의 그 독하게 쏘는 맛이 없어져 싫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잘 다듬어 매끈해지긴 했지만 그와 함께 조금은 특색 없어진 영화의 이야기가 살짝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잃은 것이 치졸함이고 얻은 것이 한 전문 분야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와 존중, 그리고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나는 그쪽을 택하고 싶다. 별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남의 불평불만을 들어주기에는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불평불만 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원작 소설의 유일한 순기능은 '하긴, 세상에 고생하는 사람이 나 뿐 만은 절대 아니지' 하는 일종의 자기위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히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고 싶다면 책은 던져 버리고 영화를 보자. 희생양은 나 하나로 족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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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cked from 널위한약속 2006/11/02 20:48 삭제
Subject: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발견한 메시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직접 보기전에 내 주변에서 들리는 평은 '상업성 영화다' , '페미니즘 영화다' , '명품으로 시작해서 명품으로 끝난다' 등의 부정적인 비평들이었다. 하지만 이 영..







